최준석 대표, 한국 남성 최초 볼쇼이 발레학교 박사과정
'발레앤모델'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4년 내한공연 계약
'볼쇼이 한국 발레학교' 설립 계획…총괄파트너로 합의
온·오프라인 발레 교육 플랫폼 기업 ‘발레앤모델’을 설립한 최준석(39) 대표는 세계 최고 발레학교인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 남성이다. 현재 30대 후반인 그는 우리나라 발레계에서 주목하는 인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 서울 가락시장에서 양배추를 나르며 학교를 다닐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큰 키에 잘생긴 외모로 한때 아역배우로도 활동했으나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오랜 방황의 시절도 거쳤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발레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줬다. 경이로운 발레의 선(線)에 반한 그는 결국 세계 최고 전통을 자랑하는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에 입학했고, 3년간 만점을 받으며 우수학생으로 졸업했다. 현재 그는 볼쇼이와의 인연을 살려 볼쇼이발레단의 국내 전속 에이전시가 됐다. 국내에 진출 예정인 볼쇼이 한국 발레학교 설립 총괄파트너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볼쇼이발레단과 내년 4월 내한 공연도 추진키로 합의했다. 볼쇼이발레단 내한 공연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6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지난 12월 18일 서울 삼청동 발레앤모델 사옥에서 그의 발레 인생과 포부를 들어봤다.
- 세계 최고 발레 학교인 볼쇼이발레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남성으로는 첫 번째 볼쇼이발레학교 학사·석사 졸업생이다. 현재 박사 과정 중인데, 일단 한국으로 돌아와서 발레교육 사업도 하고 있다. 볼쇼이에 입학하기 전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늘이 여러 번 도와준 것 같다.”
- 배우가 꿈이었는데 발레로 전향했다. 발레에 소질이 있었나. “어린 시절 연탄불을 때고 살 정도로 집이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인지 오로지 서울 가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에 유일한 탈출구가 춤이었다. TV에 나오는 모든 춤이 좋았고, 따라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걸 느꼈다. 중학교 때는 춤으로 꽤 유명했다. 당시에 외모도 좀 괜찮다고 생각해서 배우의 꿈을 꾸기도 했다. 어머니를 설득해 서울로 올라왔고, 가장 먼저 연기학원을 등록해 몇몇 작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아역배우였다. 그때도 새벽 가락시장에서 양배추 다듬고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방황을 많이 했다. 3년 동안 결석을 200일 가까이 할 정도로 문제아였다. “그때 어머니가 전화 한 통을 하셨다. ‘네가 춤을 좋아하니까 그냥 예술을 하는 게 어떻겠냐’며 발레를 추천하셨다. 처음에는 ‘어떻게 남자가 타이즈를 입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싫다고 했지만 어머니가 발레 학원에 전화를 해놨다고 하셔서 그냥 한번 가봤다. 근데 그날 봤던 발레가 굉장히 뇌리에 꽂혔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해서 상명대 무용학과를 들어가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 러시아로 유학을 간 건 큰 결심이었을 텐데.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고 싶어서 러시아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형편에 무슨 유학이냐 싶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알게 된 러시아 선교사께서 러시아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매번 넘지 못할 산을 만날 때마다 희한하게 하늘은 누군가를 보내주더라.”
- 러시아 발레학교 입학 과정이 어렵지 않았나. “러시아에 도착해 처음부터 볼쇼이발레학교에 입학한 건 아니었다. 고3 때 발레를 시작해 실력이 부족했다. 춤을 좋아하고 옛날에 비보이를 한 경험이 있어 발레를 금방 따라하긴 했지만 러시아에서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학교를 여러 군데 찾아다녔는데 그중 하나가 ‘기치스’라는 학교였다. 모스크바 국립예술대학교다. 한국으로 치면 한예종 같은 학교라고 보면 된다. ‘기치스’도 합격을 못 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도와주던 유력한 고려인이 ‘자꾸 안 된다고 하면 이 학생은 어디로 가냐’고 학교에 말을 해줬다. 학교 측에서 굉장히 고심하더니 입학을 허가해줬다. 그렇게 러시아에서의 발레 생활이 시작됐다.”
- 수업은 잘 따라갔나. “당시 교수님은 볼쇼이 수석 출신이었는데, 저를 당연히 마음에 안 들어 했다. 다 같이 혼나는 날에도 저를 가장 크게 혼내시더라. 러시아는 이미 고등학생 때 발레를 다 배운 상태여야 하고 대학교 때는 발레단 소속이 된다. 우리나라는 대학교 때까지 배우고 대학교 이후에 발레단을 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게 가장 큰 차이다. 매일 밤늦게까지 개인레슨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1년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제일 힘들었던 게 무관심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퇴서를 냈다.”
- 그럼 볼쇼이발레학교는 어떻게 갔나. “한국에 돌아가야 할 형편이었는데 볼쇼이 시험이라도 한번 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참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가 들어가야 할 학급에 여자만 14명이었고 남학생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뜻밖에 볼쇼이가 편입을 허락했다. 지금은 저를 무시했던 그 교수님한테 오히려 감사하다. 그 덕분에 꿈에 그리던 볼쇼이발레학교 학생이 됐으니까. 석사까지 5년 과정인데 기치스 1년과 볼쇼이 1년은 성적이 안 좋았지만 3학년부터 5학년까지는 전체 만점을 받고 졸업했다.”
- 세계적인 발레리노를 꿈꿀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발레 교육에 뛰어들었나. “남학생이 저 혼자다 보니까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여자들의 파트너로서는 잘했는데, 남자 솔로 작품이나 남자들과의 시너지 효과가 없으니까 스스로 좀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발레학교 중앙정원에 혼자서 자주 앉아 있곤 했다. 어느 날 ‘왜 우리나라에는 발레학교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볼쇼이발레학교는 어떻게 시작됐는지가 궁금해졌고, 어떻게 했길래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을까가 궁금해졌다. 또 러시아처럼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발레 실력이 늘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자꾸 다른 생각을 한 거다. 발레리노로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있었던 셈이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힌 잔인한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 ‘발레앤모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기업인가. “발레앤모델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발레 교육 플랫폼 회사이다. 발레앤모델 킨더, 발레앤모델 AI, 발레앤모델 아트테인먼트로 운영하고 있다. 학원 같은 오프라인 산업에서 인공지능 산업으로 성장 가능한 모델이 발레이다. 발레는 예술과 스포츠 산업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다. 최종적으로는 인공지능 발레학교 설립이 저의 꿈이다. 발레라는 게 먼저 선생님이 시범 보이고 학생이 따라하는 것인데, 인공지능 발레 교육은 그 사람의 데이터를 계속 모아 분석하는 방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틱톡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인공지능 맞춤형 교육은 개인 정보를 입력해 학습에 따라 계속 신체가 진화해가는 과정도 보여주기 때문에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일종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을 거다. 발레앤모델 AI는 교과서 격인 볼쇼이발레학교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AI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제공할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발레 교육 기업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 볼쇼이발레단 내한공연을 성사시켰다. 어떻게 가능했나. “올해 초 발레앤모델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 회사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6월 16일 무작정 모스크바로 갔다. 이상하게도 가장 힘든 때였는데 러시아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탓에 비행기 직항 노선이 사라져 카타르를 거쳐 20시간 정도 걸려 갔다. 러시아에서 볼쇼이발레단 바지예프 단장을 만나기 위해 마냥 기다렸다. 이틀 동안 기다리다 셋째 날 만남이 성사됐는데, 한국 발레산업 발전을 위해 볼쇼이 출신의 한국 기업인이 필요하고, 볼쇼이발레단의 협조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건 바지예프 단장 스스로 누누이 말씀하셨던 바다. 요즘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좀 불편한 사이인데 평화의 상징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인 발레를 앞세워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며 내한 공연을 요청했다. 바지예프 단장도 한국 발레산업 발전을 위해 힘껏 돕겠다면서 계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큰일을 해냈다.”
- 볼쇼이발레단 국내 전속 에이전시가 됐다. “볼쇼이발레단과 4가지 협약을 체결했다. 그중 가장 의미가 큰 건 국내 공연 등 모든 행사 독점권을 갖게 된 것이다. 볼쇼이 수장인 바지예프 단장과 이와 관련된 합의서를 작성했다. 또 앞으로 4년 동안 갈라쇼 2회, 전막 공연 2회 개최에도 공동 합의했다. 갈라쇼는 내한공연 역사상 최초다. 상반기·하반기로 나눠 앞으로 4년 동안 8번 공연을 유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이것도 추진해보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러시아 최고 발레리나 자하로바가 내한 공연 모델이 되는 것도 허가해줬다. 볼쇼이 내한공연은 내년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참여하는 갈라쇼 형식으로 진행한다.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는 “볼쇼이발레단과 국내 첫 발레 학교를 공동설립하는 데도 합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발레앤모델이 볼쇼이 한국 발레학교 공식 총괄파트너라는 문구까지 합의서에 넣었다. 볼쇼이극장의 승인까지 받은 사안이다. 볼쇼이발레단은 볼쇼이극장 소속이라 최종 결재라인은 극장 측이다. 합의각서에는 발레앤모델이 볼쇼이극장 최초의 한국 발레학교 설립의 총괄파트너가 되고, 바지예프 단장이 학교장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4월 내한공연에서 바지예프 단장께서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실 예정이다.”
- ‘발레앤모델’ 삼청동 사옥에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이 건물에서 고 앙드레김 선생과 한복의 대가 고 이리자 선생의 성공 스토리가 탄생했다. 당초 건물주가 입주 자체를 쉽게 허가하지 않았는데 이리자 선생 가족 분들과 면접 겸 대화를 나누고 입주를 허락받았다.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업을 하는 건지 물어보더니 계약을 하자고 했다. 입주 1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이 건물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어 종로구청에서 건물 사용 허가를 잘 내주지 않았다. 회사 간판을 1년 동안 달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야 달았다. 볼쇼이발레단 공연 추진을 하면서 회사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 큰 어른들께서 머무셨고, 큰 업적을 이루셨던 공간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발레 문화산업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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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대표, 한국 남성 최초 볼쇼이 발레학교 박사과정
'발레앤모델'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4년 내한공연 계약
'볼쇼이 한국 발레학교' 설립 계획…총괄파트너로 합의
온·오프라인 발레 교육 플랫폼 기업 ‘발레앤모델’을 설립한 최준석(39) 대표는 세계 최고 발레학교인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 남성이다. 현재 30대 후반인 그는 우리나라 발레계에서 주목하는 인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 서울 가락시장에서 양배추를 나르며 학교를 다닐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큰 키에 잘생긴 외모로 한때 아역배우로도 활동했으나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오랜 방황의 시절도 거쳤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발레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줬다. 경이로운 발레의 선(線)에 반한 그는 결국 세계 최고 전통을 자랑하는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에 입학했고, 3년간 만점을 받으며 우수학생으로 졸업했다. 현재 그는 볼쇼이와의 인연을 살려 볼쇼이발레단의 국내 전속 에이전시가 됐다. 국내에 진출 예정인 볼쇼이 한국 발레학교 설립 총괄파트너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볼쇼이발레단과 내년 4월 내한 공연도 추진키로 합의했다. 볼쇼이발레단 내한 공연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6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지난 12월 18일 서울 삼청동 발레앤모델 사옥에서 그의 발레 인생과 포부를 들어봤다.
- 세계 최고 발레 학교인 볼쇼이발레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남성으로는 첫 번째 볼쇼이발레학교 학사·석사 졸업생이다. 현재 박사 과정 중인데, 일단 한국으로 돌아와서 발레교육 사업도 하고 있다. 볼쇼이에 입학하기 전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늘이 여러 번 도와준 것 같다.”
- 배우가 꿈이었는데 발레로 전향했다. 발레에 소질이 있었나. “어린 시절 연탄불을 때고 살 정도로 집이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인지 오로지 서울 가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에 유일한 탈출구가 춤이었다. TV에 나오는 모든 춤이 좋았고, 따라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걸 느꼈다. 중학교 때는 춤으로 꽤 유명했다. 당시에 외모도 좀 괜찮다고 생각해서 배우의 꿈을 꾸기도 했다. 어머니를 설득해 서울로 올라왔고, 가장 먼저 연기학원을 등록해 몇몇 작품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아역배우였다. 그때도 새벽 가락시장에서 양배추 다듬고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방황을 많이 했다. 3년 동안 결석을 200일 가까이 할 정도로 문제아였다. “그때 어머니가 전화 한 통을 하셨다. ‘네가 춤을 좋아하니까 그냥 예술을 하는 게 어떻겠냐’며 발레를 추천하셨다. 처음에는 ‘어떻게 남자가 타이즈를 입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싫다고 했지만 어머니가 발레 학원에 전화를 해놨다고 하셔서 그냥 한번 가봤다. 근데 그날 봤던 발레가 굉장히 뇌리에 꽂혔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해서 상명대 무용학과를 들어가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 러시아로 유학을 간 건 큰 결심이었을 텐데.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고 싶어서 러시아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형편에 무슨 유학이냐 싶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알게 된 러시아 선교사께서 러시아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매번 넘지 못할 산을 만날 때마다 희한하게 하늘은 누군가를 보내주더라.”
- 러시아 발레학교 입학 과정이 어렵지 않았나. “러시아에 도착해 처음부터 볼쇼이발레학교에 입학한 건 아니었다. 고3 때 발레를 시작해 실력이 부족했다. 춤을 좋아하고 옛날에 비보이를 한 경험이 있어 발레를 금방 따라하긴 했지만 러시아에서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학교를 여러 군데 찾아다녔는데 그중 하나가 ‘기치스’라는 학교였다. 모스크바 국립예술대학교다. 한국으로 치면 한예종 같은 학교라고 보면 된다. ‘기치스’도 합격을 못 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도와주던 유력한 고려인이 ‘자꾸 안 된다고 하면 이 학생은 어디로 가냐’고 학교에 말을 해줬다. 학교 측에서 굉장히 고심하더니 입학을 허가해줬다. 그렇게 러시아에서의 발레 생활이 시작됐다.”
- 수업은 잘 따라갔나. “당시 교수님은 볼쇼이 수석 출신이었는데, 저를 당연히 마음에 안 들어 했다. 다 같이 혼나는 날에도 저를 가장 크게 혼내시더라. 러시아는 이미 고등학생 때 발레를 다 배운 상태여야 하고 대학교 때는 발레단 소속이 된다. 우리나라는 대학교 때까지 배우고 대학교 이후에 발레단을 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게 가장 큰 차이다. 매일 밤늦게까지 개인레슨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1년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제일 힘들었던 게 무관심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퇴서를 냈다.”
- 그럼 볼쇼이발레학교는 어떻게 갔나. “한국에 돌아가야 할 형편이었는데 볼쇼이 시험이라도 한번 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참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가 들어가야 할 학급에 여자만 14명이었고 남학생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뜻밖에 볼쇼이가 편입을 허락했다. 지금은 저를 무시했던 그 교수님한테 오히려 감사하다. 그 덕분에 꿈에 그리던 볼쇼이발레학교 학생이 됐으니까. 석사까지 5년 과정인데 기치스 1년과 볼쇼이 1년은 성적이 안 좋았지만 3학년부터 5학년까지는 전체 만점을 받고 졸업했다.”
- 세계적인 발레리노를 꿈꿀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발레 교육에 뛰어들었나. “남학생이 저 혼자다 보니까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여자들의 파트너로서는 잘했는데, 남자 솔로 작품이나 남자들과의 시너지 효과가 없으니까 스스로 좀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발레학교 중앙정원에 혼자서 자주 앉아 있곤 했다. 어느 날 ‘왜 우리나라에는 발레학교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볼쇼이발레학교는 어떻게 시작됐는지가 궁금해졌고, 어떻게 했길래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을까가 궁금해졌다. 또 러시아처럼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발레 실력이 늘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자꾸 다른 생각을 한 거다. 발레리노로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있었던 셈이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힌 잔인한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 ‘발레앤모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기업인가. “발레앤모델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발레 교육 플랫폼 회사이다. 발레앤모델 킨더, 발레앤모델 AI, 발레앤모델 아트테인먼트로 운영하고 있다. 학원 같은 오프라인 산업에서 인공지능 산업으로 성장 가능한 모델이 발레이다. 발레는 예술과 스포츠 산업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다. 최종적으로는 인공지능 발레학교 설립이 저의 꿈이다. 발레라는 게 먼저 선생님이 시범 보이고 학생이 따라하는 것인데, 인공지능 발레 교육은 그 사람의 데이터를 계속 모아 분석하는 방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틱톡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인공지능 맞춤형 교육은 개인 정보를 입력해 학습에 따라 계속 신체가 진화해가는 과정도 보여주기 때문에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일종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을 거다. 발레앤모델 AI는 교과서 격인 볼쇼이발레학교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AI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제공할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발레 교육 기업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 볼쇼이발레단 내한공연을 성사시켰다. 어떻게 가능했나. “올해 초 발레앤모델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 회사 안팎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6월 16일 무작정 모스크바로 갔다. 이상하게도 가장 힘든 때였는데 러시아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탓에 비행기 직항 노선이 사라져 카타르를 거쳐 20시간 정도 걸려 갔다. 러시아에서 볼쇼이발레단 바지예프 단장을 만나기 위해 마냥 기다렸다. 이틀 동안 기다리다 셋째 날 만남이 성사됐는데, 한국 발레산업 발전을 위해 볼쇼이 출신의 한국 기업인이 필요하고, 볼쇼이발레단의 협조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건 바지예프 단장 스스로 누누이 말씀하셨던 바다. 요즘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좀 불편한 사이인데 평화의 상징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인 발레를 앞세워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며 내한 공연을 요청했다. 바지예프 단장도 한국 발레산업 발전을 위해 힘껏 돕겠다면서 계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큰일을 해냈다.”
- 볼쇼이발레단 국내 전속 에이전시가 됐다. “볼쇼이발레단과 4가지 협약을 체결했다. 그중 가장 의미가 큰 건 국내 공연 등 모든 행사 독점권을 갖게 된 것이다. 볼쇼이 수장인 바지예프 단장과 이와 관련된 합의서를 작성했다. 또 앞으로 4년 동안 갈라쇼 2회, 전막 공연 2회 개최에도 공동 합의했다. 갈라쇼는 내한공연 역사상 최초다. 상반기·하반기로 나눠 앞으로 4년 동안 8번 공연을 유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이것도 추진해보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러시아 최고 발레리나 자하로바가 내한 공연 모델이 되는 것도 허가해줬다. 볼쇼이 내한공연은 내년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참여하는 갈라쇼 형식으로 진행한다.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는 “볼쇼이발레단과 국내 첫 발레 학교를 공동설립하는 데도 합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발레앤모델이 볼쇼이 한국 발레학교 공식 총괄파트너라는 문구까지 합의서에 넣었다. 볼쇼이극장의 승인까지 받은 사안이다. 볼쇼이발레단은 볼쇼이극장 소속이라 최종 결재라인은 극장 측이다. 합의각서에는 발레앤모델이 볼쇼이극장 최초의 한국 발레학교 설립의 총괄파트너가 되고, 바지예프 단장이 학교장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4월 내한공연에서 바지예프 단장께서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실 예정이다.”
- ‘발레앤모델’ 삼청동 사옥에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이 건물에서 고 앙드레김 선생과 한복의 대가 고 이리자 선생의 성공 스토리가 탄생했다. 당초 건물주가 입주 자체를 쉽게 허가하지 않았는데 이리자 선생 가족 분들과 면접 겸 대화를 나누고 입주를 허락받았다.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업을 하는 건지 물어보더니 계약을 하자고 했다. 입주 1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이 건물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어 종로구청에서 건물 사용 허가를 잘 내주지 않았다. 회사 간판을 1년 동안 달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야 달았다. 볼쇼이발레단 공연 추진을 하면서 회사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 큰 어른들께서 머무셨고, 큰 업적을 이루셨던 공간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발레 문화산업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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